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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갱신한 1인 가구는 꾸준히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인 가구 속 ‘1’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숫자로서의 하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독립된 주체로서 정체성을 가지는 최소의 단위를 의미한다. 하나의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어 가는 1인 가구에 대해 살펴본다.
※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는 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생활의 변화들을 관측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story.some.co.kr 참조

한때 ‘미생(未生)’이라는 말이 우리를 위안하던 시기가 있었다. 2014년 방영한 tvN 드라마 ‘미생’에서 “우리는 아직 다 미생이야”라는 명대사가 등장한 즈음으로 기억한다. 이미 웹툰 원작으로도 입소문이 났던 작품이지만 당시 현실 고증에 가까운 연출과 몰입을 극대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더욱 화제가 되었다. 

어리숙한 신입사원 장그래는 물론 정직하게 직장 생활을 해온 오상식 과장까지 모두가 각자의 어려움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모습에 수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필자에게도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더할 나위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다. 버티는 것이 완생으로 가는 길이라는 믿음은 지금은 부족하더라도 괜찮다는 위로를 해주었고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지난해 등장한 새로운 현실 고증 작품은 유튜브 웹드라마 ‘좋좋소(좋소좋소좋소기업)’이다. “좋좋소는 고증에 가까운 다큐이며, 미생은 판타지였다”는 후기가 많을 정도로 중소기업에서 실제로 경험할 법한 답답한 상황이 디테일하게 그려진다.

오 과장에게서 ‘우리 애’라는 소속감을 경험한 ‘미생’의 장그래는 업무와 사회생활을 많이 배우고 계약 종료로 회사를 떠난다. 하지만 ‘좋좋소’의 조충범은 잡일과 갑질에 도망친 경험이 있으며 시즌 3 끝에는 이직 면접을 본다.

현재를 흔히들 희망이 없는 시대라고 부르지 않는가. ‘존버가 승리한다’는 주문에도 완생은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사람들은 ‘정말 존버만이 답일까?’라는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했고 ‘빠른 손절만이 답’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없거나 정당한 보상을 얻지 못할 땐 빠르게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 하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싶을 땐 내가 나 스스로를 챙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물며 존버하던 현대인의 최후라고 불리는 ‘번아웃증후군’은 2019년 이미 WHO에서 질병으로 분류한 바 있다. 그렇다면 버티기만을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요즘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는 정체성은 무엇일까. 바로 ‘1인’이다.

독립은 1인분을 해내는 것

나 스스로를 챙기는 1인은 세상에 달랑 혼자만 남은 것 같은 철저한 개인주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1인으로서 자신의 몫을 아는 사람이다.

특히 사회 초년생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갖는 태도를 드러내는 말로 관찰되는 표현은 ‘1인분을 해내다’이다. 이는 게임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으로 최근 스포츠, 회사, 인생으로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게임에서처럼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생활은 대개 팀으로 이루어진 상황 속에 있고 같은 목표를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자 맡은 바를 잘해 내야 한다. 소위 1인분을 못하며 묻어 가면 안 되는 것이다. 다만 1인분을 하는 개인의 공정성을 가지고 간다면 설령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1인분을 했다는 것은 인정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못해도 1인분은 하자’라든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인분만큼만 하자’라는 태도가 많은 사회 초년생들의 디폴트 값이 되었다. 즉 ‘1인분’은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뜻하는 말이자 역할을 다했을 경우 받는 대가를 함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1인은 독립을 전제로 한 상태이다. 지금 당장 완전하지 않더라도 온전히 자신으로 있기를 택한 사람의 정체성이다. 바이브컴퍼니의 소셜미디어 분석 플랫폼인 썸트렌드비즈에서 ‘독립하다’와 ‘자취하다’의 연관어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돌아갈 본가가 있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기숙사에 살 것이냐, 작은 원룸에서 살 것이냐를 따져보는 자취는 임시 상태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나이가 어느 정도 찬 성인이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혼자 생활하는 독립은 몸만 독립한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독립한 상태이다.

1인도 가구다

독립한 사람이자 책임과 대가의 기준 단위인 ‘1인’이 코로나19 이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 또 하나의 키워드는 ‘1인 가구’이다. 썸트렌드비즈에서 최근 3년간의 1인 가구 월별 언급량 추이를 검색해 보면 지난해 이후 1인 가구 언급량이 ‘4인 가구, 4인 가족’ 언급량을 넘어섰다. 2020년 3월~4월의 피크 이후 4인 가구의 언급량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왔으나 1인 가구의 언급량은 조금씩 증가한 덕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체로 가족이 하나의 세대를 구성했고 동시에 가족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여겼다. 하지만 가족의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고 1인 가구로 대표되는 독자적인 세대 구성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기본단위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등장했다. 이러한 논의에 속도를 높인 최근의 배경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지급된 재난지원금이 있다.

코로나19 이전에 1인 가구에 대한 관심은 비슷한 정도를 유지하다가 긴급재난지원금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인 가구에 대한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킨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다시금 가족 중심의 사회 제도와 인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가구원 수를 고려해 책정된 금액이 곧장 세대주에게 지급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개선하고자 5차 재난지원금은 개별 가족 구성원에게 지급되는 방식으로 개편되어 개개인의 삶에서 지원금이 사용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4인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기존의 정책 결정 방식에 대해 사회적 차원에서 되돌아보게 되었고 늘어나고 있던 1인 가구들이 스스로를 1인 가구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해낸 1인분의 노력을 1인분만큼의 기여로 인정받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인 가구로서 세금도 내고 사회생활을 했으니 1인 가구만큼의 복지 혜택을 받고자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실 1인 가구는 2000년대 이후 그 비중이 크게 늘면서 보편화되기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지난 익숙한 개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와 형태가 달라졌다.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안부 인사를 건네게 되는 독거 청년, 임시의 삶, 꼬질꼬질한 자취생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독립체이며 소비와 가치의 트렌드 리더로 선망받는 한 사람이 된 것이다.

단순히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으로 집을 여기기 때문에 물건 하나를 들이는 데에도 기준이 달라진다. 매일 커피를 즐기는 나를 위해 일리 커피머신과 제네바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여놓은 홈카페존은 오로지 나의 취향을 위한 공간이 된다.

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침대는 퀸사이즈 매트리스에 숙면에 좋다는 침구로 교체해 수면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 심지어 ‘혼자 사는 데 이렇게까지 필요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안일을 덜어 주는 ‘신세계 가전’인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건조기 등을 갖추고자 하는 1인 가구들이 늘고 있다.

1인이라는 정체성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비 시장에서 1인 가구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많은 기업과 브랜드에서 이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모습이 관찰된다. 그러나 이들은 각기 다른 한 명의 사람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똑같이 음악 감상을 취미로 하는 1인 가구라고 할지라도 혼자 사는 집에서도 에어팟을 통해 음악을 듣는 사람과 헤드셋을 이용하는 사람,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놓는 사람, 커다란 턴테이블에 하나씩 사모은 LP판을 올려 음악을 듣는 사람 등 각자의 생활양식이 너무나 다르다.

여기에 더해 4인 가구이지만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자신의 방에서 헤드셋을 이용해 혼자 듣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이 상황에서 그는 앞서 언급한 ‘1인 가구이면서 헤드셋을 사용하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4인 가구’라는 정체성을 가질까.

아니다. 오히려 ‘외부 환경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가진 1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다.

JTBC에서 방영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해방타운’은 ‘내가 나로 돌아가는 곳’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기혼이지만 1인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낸다. 기혼자로서 마주하는 상황적 한계에 부딪혀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들도 다인 가구의 정체성을 넘어 1인의 정체성을 되찾기를 희망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청자들 또한 1인의 정체성을 선망한다는 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결국 1인 가구에 대한 논의는 ‘가구’에 방점을 찍고 다인 가구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1인’에 방점을 찍고 1인이라는 하나의 독립체를 온전한 사회 구성단위로 인정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특정 상황에서 각자가 가지는 정체성으로 소비자를 이해하지 않고 기존의 타깃 구분으로만 소비자를 바라보려 한다면 그 브랜드는 헛물켜고 있는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따라서 1인 가구라는 라이프스타일과 가구 구성 형태를 특정 타깃 그룹으로 여기기 전에 그들의 정체성을 ‘자취생’이 아닌 ‘1인분을 하는 사람’, ‘1인이라는 온전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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